
옆 차선은 늘 빨라 보인다 | AI 정보 홍수 속 소음 말고 소리를 듣는 법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강남 이면도로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앞유리 너머로 배달의민족 오토바이 한 대가 멈춰 섰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니 인도 위에 민트색 상자 하나가 서 있었다. 배민 배달 로봇 딜리였다. 몸통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로봇배달 이용하면 약속한 시간에 도착”
배달라이더와 로봇. 같은 회사 색을 입은 두 배달원이 한 프레임에 들어왔다. 휴대폰을 꺼내 셔터를 눌렀다.



배달라이더와 로봇, AI 시대 일자리 변화를 한 장면에서 봤다
딜리는 배민을 운영하는 회사 우아한형제들이 직접 만든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다. 2025년 2월부터 강남 논현·역삼 일대에서 배민B마트 상품을 나른다. 올해 8월 들어온 새 모델은 주행 거리 99% 이상을 사람 손 없이 달린다고 한다.
배달라이더는 플랫폼이나 배달대행사를 통해 건수당 수수료(평균 3,000원대 전후)를 받는다. 일자리 생각이 따라왔다. ‘로봇이 배달 라이더 일자리를 가져갈까?’
로봇은 아직까지 라이더 일을 통째로 가져가진 않는다. 짧은 거리를 반복해서 오가는 이동부터 한 조각씩 떼어 가고 있다.
콘텐츠가 가득한 인터넷 도로에는 이미 로봇이 더 많다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머릿속에 다른 장면이 생각났다. 아침마다 보는 링크드인과 페이스북 피드였다.
도로 위 로봇은 아직 몇 대뿐이다. 콘텐츠가 가득한 인터넷 도로는 다르다. AI 리서치 업체 ▶️Pangram Labs가 올해 4월 말부터 6월까지 링크드인, X, 레딧 등 5개 플랫폼 게시물 100만 2,627건을 분석했다. 250단어가 넘는 링크드인 장문 게시물 40% 이상이 처음부터 끝까지 AI가 쓴 글이었다. 5개 플랫폼에서 걸러낸 AI 글 가운데 62%가 링크드인 한 곳에서 나왔다.
결국 링크드인이 직접 나섰다. 7월 말 게시물마다 ‘AI 슬롭 같다’는 신고 버튼을 달았다. 2주 만에 100만 번 넘게 눌렸다.
뉴스도 다르지 않다. 네이버를 열면 같은 사건을 다룬 기사 수십 건이 줄을 선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뉴스리포트 2026’에서 한국인 61%는 포털과 검색으로 뉴스를 본다고 답했다. 뉴스를 믿는다는 응답은 30%에 그쳤다.
양이 늘자 사람들은 피하기 시작했다. 같은 조사에서 뉴스를 일부러 피한다는 응답은 48개국 평균 42%였다. 2017년 처음 물었을 때는 29%였다.
미국의 유명 사전 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가 ‘올해의 단어’로 AI 슬롭(AI Slop.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아무런 검수 없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저품질·저질 디지털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을 말한 것도 이제는 체감된다.
만드는 값이 싸지면 고르는 안목이 비싸진다
예전에는 블로그 글 한 편에 반나절 이상이 걸렸다. 지금은 몇 초면 초안이 나온다. 무언가를 만드는 값이 0에 가까워지면 무엇이 귀해질까?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1971년에 이미 답을 적어 두었다.
“정보의 풍부함은 다른 무언가의 빈곤을 의미한다. 즉, 정보가 소비하는 무언가의 결핍을 초래한다. 정보가 소비하는 것은 명확하다. 바로 정보 수용자의 관심(Attention)이다.”
정보가 넘치면 그 정보를 받아들일 관심(Attention)이 모자라진다. 50년 전 문장이 지금 링크드인과 페이스북 피드에서 그대로 벌어진다.
정보는 흔해졌다. 귀해진 쪽은 고르는 안목이다.
마케터 일도 같다. 콘텐츠를 하나 더 만드는 능력은 이제 AI가 더 잘한다. 무엇을 만들지 않을지 정하는 판단은 아직 사람에게 있다. 배달로봇 딜리가 배달을 맡아도, 어디로 무엇을 보낼지는 사람이 정하듯.
소리와 소음, 리터러시로 가른다
강남 대로 한 블록에만 간판이 수십 개다. 현수막, 전광판, 디지털 사이니지까지 저마다 말을 건다. 사진 속 배달로봇 옆면에도 광고가 붙어 있었다. 운전자는 그걸 다 읽지 않는다. 신호등과 차선, 내비게이션 화살표만 본다. 간판이 쓸모없어서 안 읽는 게 아니다. 지금 가는 목적지와 상관이 없어서다.
사람이 하루에 광고를 5,000개 본다는 말이 마케팅 업계에 오래 돌았다. ▶️2007년 뉴욕타임스가 시장조사업체 얀켈로비치 추정치를 인용하면서 퍼진 숫자다.
▶️미국 미디어 리서치 업체 미디어다이내믹스가 2014년 TV, 라디오, 인터넷, 신문, 잡지 광고만 따로 셌다. 하루에 접한 광고는 362개였다. 눈길이 간 광고는 153개, 기억에 남은 광고는 12개였다. 30개 가운데 1개꼴이다.
강남 대로 간판과 현수막, 전광판 광고 같은 옥외 광고판은 이 숫자에 들어 있지도 않다. 벌써 20여년전 조사이니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아졌을거다.
통계학자 네이트 실버는 자신의 책 『신호와 소음(The Signal and the Noise)』에서 정보가 늘어날수록 소음이 신호보다 빠르게 불어난다고 봤다. 2012년에 낸 책이다. 그때는 생성형 AI가 없었다.
이 둘을 가려내는 힘을 리터러시(Literacy)라고 부른다. 리터러시는 글을 잘 읽는 능력만 뜻하지 않는다. 읽지 않아도 될 글과 소음을 알아보고 빠르게 무시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할 줄 아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은 다르다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글로 돈 버는 사람은 적다.
AI 덕분에 유튜브 영상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유튜브로 수익을 내는 사람은 훨씬 적다. 유튜브 교육 회사 튜브스쿨을 운영할 때 수강생에게 가장 먼저 물은 질문도 편집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목표였다. 무엇을 위해 채널을 여는지 모르면 편집 실력은 늘어도 채널은 자라지 않는다.
AI도 똑같다. 업무 하나를 AI로 자동화할 줄 아는 것과 그 자동화로 회사가 돈을 버는 건 다르다. 직원의 반복 업무가 줄었다고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연결하는 건 경영진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두 문장 사이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MIT 미디어랩 NANDA 프로젝트가 2025년 7월 낸 보고서 ▶️‘The GenAI Divide’가 이 거리를 숫자로 보여 준다. 기업들이 생성형 AI에 300억~400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그런데 95%는 손익에 측정 가능한 변화가 없었다. 보고서는 말한다.
“Just 5% of integrated AI pilots are extracting millions in value” (AI 파일럿 가운데 수백만 달러 가치를 뽑아내는 곳은 5%뿐이었다)
FOMO, FOBO는 옆 차선에서 온다
차가 막히면 옆 차선이 늘 빨라 보인다. 빠르게 가기 위해 깜빡이를 켜고 끼어들면 신기하게도 내가 처음에 있던 차선이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요즘 AI 소식이 딱 이렇다. 구글이 새 모델을 냈다. 클로드가 신기능을 출시했다. ChatGPT가 업데이트를 발표했다. 누구는 벌써 에이전트를 수십 개나 돌려 자동화한다더라. 링크드인 피드에는 “이거 모르면 뒤처진다”는 글이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조급함은 FOMO(Fear of Missing Out)와 FOBO(Fear of Better Options / Becoming Obsolete) 키워드로 설명된다.
| 구분 | FOMO (Fear of Missing Out) | FOBO (Fear of Better Options / Becoming Obsolete) |
|---|---|---|
| 심리 상태 | “나만 빼고 다 좋은 거 하는 거 아니야?” | “더 좋은 게 있을지 몰라 / 내가 곧 도태될까?” |
| 행동 방향 | 무조건 추종·참여 (서두름) | 결정 유보·회피·정체 (망설임) |
| 주요 원인 | 타인과의 비교, SNS, 단기적 유행 | 과도한 선택지, 급격한 기술 변화(AI 등) |
이 조급함은 숫자로도 보인다. ▶️영국 헨리경영대학원이 2026년 직장인 2,900명에게 물었더니 61%가 AI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벅차다고 답했다. 미국 구직 플랫폼 레주메나우 조사에서는 직장인 30%가 뒤처질까 봐 자기 돈을 들여 AI를 배울 생각이라고 했다. 44%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고 답했다.
옆 차선을 다시 보자. ▶️골드만삭스가 미국 인구조사국 자료로 집계했더니, 2026년 3월 기준 AI를 도입한 미국 사업체는 19%가 안 됐다. 링크드인이나 페이스북, 네이버 기사를 보면 다들 차선을 바꾼 듯 보이지만 실제로 차선을 바꾼 차는 많지 않다. 투명한 비눗방울(거품) 속 필터버블에 갇혀 나에게 맞춤화된 정보 속에만 머물게 되면서 착각하게 된 결과다.
SEO와 GEO 일을 하다 보면 매주 “판이 바뀌었다”는 글을 만난다. 그때마다 사이트 유입과 AI 인용 데이터를 열어 본다. 대부분은 그대로다. 요란한 소식에 비해 실제로 숫자를 움직이는 소식은 따로 있다.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말이 귀를 닫자는 말은 아니다. 나와 관련 있다고 느껴졌을 때만 깊이 판다.
남들이 다 이쪽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이는데 반대쪽으로 가는 NO라고 말하려면 내면의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만용에서 나오지 않고 나 자신을 믿고 판단하는 올바른 정체성에 나온다.
내가 속한 도메인이나 직업에서 이 정체성이 없다면 FOMO와 FOBO를 악용해 우리 회사나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가려는 사람들에게 속게 된다.
배달로봇 달리도 그렇게 용기 있게 달린다. 옆 차선을 보지 않는다. 정해진 길만 반복해서 오가는 정체성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속한 시간을 지킨다.
내 도메인에서 소리를 거르는 다섯 가지 질문
AI 관련 새 소식이 들어오면 이 다섯 가지를 물어보자.
① 이 정보가 내 고객 문제와 닿아 있는가.
② 우리 회사 매출, 비용, 리스크 가운데 무엇을 바꾸는가. 셋 다 아니면 가볍게 무시하자.
③ 3개월 뒤에도 유효한가. 다음 주 다른 발표에 덮일 소식이라면 알림만 받아 둔다.
④ 누가, 어떤 근거로 말하는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무엇을 세일즈 하는지 다니고 있는 회사도 함께 본다.
⑤ 지금 내가 이걸 모른다면 실제로 무엇을 잃는가. 답이 “불안하다” 하나뿐이라면 FOMO & FOBO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