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불과 빨간불 사이 | AI 콘텐츠 업무효율화가 반음씩 틀어지는 이유

기타 연주를 위해 튜닝은 필수다. 가끔 튜너 불빛이 녹색과 빨간색 사이에서 한 번씩 머뭇거린다. ‘시간 없으니 튜닝은 이 정도면 괜찮겠지…‘ 튜닝을 할 때마다 머뭇거린 내 마음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괜찮지 않다는 건 첫 코드에서부터 느껴진다. 튜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기타로 곡을 이어갈수록 반음 어긋난 소리가 귀 안쪽을 살살 긁는다. 회사에서 AI 콘텐츠 업무효율화를 맡은 뒤로 이 불빛이 자꾸 떠오른다.

10년 넘게 함께한 통기타와 튜너 ⓒ뱅커장

같은 AI를 나눠 주면 같은 노래가 날까

직원에게 같은 AI와 같은 시스템 프롬프트를 세팅하면 같은 결과물이 나올까. 그렇지 않다. 연주하는 손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회사에서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반의 마케팅 콘텐츠와 GEO를 맡고 있다. 얼마 전 숙제 하나를 받았다. 조직 내 콘텐츠 에디터와 기획자마다 들쭉날쭉한 업무 속도와 방식을 ‘AI 콘텐츠 업무효율화’라는 이름으로 표준화해 고르게 맞춰 달라는 요청이었다.

윗분들이 그린 그림은 아마 심플했을거다. 팀 계정 AI를 쓰고 시스템 프롬프트를 똑같이 세팅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누구든 ‘딸깍’ 한 번에 결과물이 좋아진다. 직원들 업무 능력이 상향 평준화되면 인력 효율화가 된다. 결국 비용 절감을 통한 조직 슬림화까지 가능한거 아닌가.

쉽게 말해 같은 기타와 같은 악보를 받았으니 같은 노래가 나오리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노래방에서 같은 노래를 불러도 부르는 사람 수만큼 버전이 다르다는 사실을.

AI 초보의 손은 오픈코드를 잡는다

조직에서 AI를 활용한 결과물 차이는 크게 세 군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프롬프트 입력이다. 누구는 토큰을 물 쓰듯 쓰고 누구는 위키 기반 명령으로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두 번째는 컨텍스트. 단순 채팅으로 일을 시키는 사람과 클로드 코드나 코덱스를 활용해 자료와 맥락을 갖춰 내미는 사람은 출발부터 다르다.

세 번째는 점검이다. 결과물에 대한 품질통제(Quality Control)를 어디까지 할지 조직과 개인 모두 설정했는지 여부.

나는 취미로 기타를 친다. 실력이 좋지 않아 줄을 열어 둔 채 울리는 오픈코드를 주로 잡는다. 오픈코드는 바로 연주하기 편한 반면 정직하다. 튜닝을 덜한 줄 하나가 화음 전체에 얼룩을 남긴다.

AI 앞에서는 우리 대부분은 초보다. 개인이 취미나 업무로 쓰는 일도 초보인데, 조직 내 사용은 더더욱 초보다. 대기업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튜닝이 부족해 틀어진 음을 손끝으로 감출 실력이 없다.

시스템 프롬프트는 튜너처럼 기준을 보여 줄 뿐 줄감개를 대신 돌려 주진 않는다. 때문에 AI 콘텐츠 업무효율화 같은 일을 위해 수립할 워크플로우는 도구보다 하네스(Harness) 같은 손부터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AI 도입은 첫 소절만 괜찮다

조직에서 AI 도입을 위해 하네스 같은 손 설계를 건너뛰고 도구만 나눠줘도 처음엔 잘 돌아가는 듯 보인다. 문제는 곡이 길어질수록 나타난다.

첫 추진 보고서에는 “AI 도입으로 업무 효율화 완료” 문장을 그럴듯하게 보고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삐걱거린다. 몇 주만 지나면 담당자마다 제각기 다른 톤과 다른 수준의 콘텐츠가 양산된다. 관리는 더욱 어려워진다.

GEO에서는 이 어긋남이 더 크게 들린다. AI는 여러 채널에 흩어진 우리 콘텐츠를 모아 읽고 답을 엮는다. IMC로 맞춘 한 목소리가 파트마다 흔들리면 AI가 들려주는 우리 회사 노래도 흔들린다. 처음 튜닝에 시간을 투입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다.

AI 도입을 서두르는 목소리는 대개 위에서 온다.

“왜 아직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일단 해 보세요.”

경영진이 속도를 원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걸리는 건 속도 뒤에 접힌 다른 계산이다. 내년에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광을 팔 보고서 한 장이면 충분하다. 장기적 품질 관리를 통한 비즈니스 성장보다 “했다”는 한 줄이 급한 사람도 있다.

AI 도입을 모든 사람이 반길 거라는 기대는 위에서 내려다볼 때만 맞다. 아래에서 일하는 직원 자리에서는 할 일이 하나 늘었다는 소식으로만 들린다.

AI 워크플로우를 손보며 처음 부딪힌 벽도 시스템 프롬프트가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새 도구를 배우고 프롬프트를 고치고 결과물을 다시 확인하는 일이 각자 일에 추가된다. 원래 하던 일은 그대로인채.

새 기타 줄도 그렇다. 기타 줄을 교체하면 소리는 맑아지지만 며칠은 줄이 늘어나 몇 번이고 다시 맞춰야 한다. 그럴때면 손에 익은 헌 줄을 그냥 두고 싶어진다. 여러 리서치들도 같은 말을 한다.

① AI 도입 후 일이 늘었다. 업워크 연구소가 2024년 미국과 영국과 호주와 캐나다에서 2,500명을 조사했다. 경영진 96%는 AI가 생산성을 높이리라 기대했다. 정작 AI를 쓰는 직원 77%는 업무량이 늘었다고 답했다. 결과물 검토(39%)와 도구 학습(23%)이 늘어난 일로 꼽혔다. ▶️ 업워크 연구소 2024

② AI 도입 후 없던 일이 생겼다. 덴마크 경제학자 훔룸과 베스테르고르 분석에서 챗봇 때문에 새 업무를 떠맡은 노동자는 8.4%였다. AI 결과물을 고치고 프롬프트를 다듬는 일이다. 아낀 시간은 근무 시간의 3% 안팎이었다. ▶️ Humlum & Vestergaard NBER 2025

③ AI 도입 후 전환 비용이 크다. 김희웅과 칸칸할리는 새 정보 시스템에 대한 저항 한가운데에 전환 비용이 있다고 봤다. 배우는 수고와 익숙함을 잃는 아쉬움이 클수록 사람은 제자리에 머문다. 현상 유지 편향이다. ▶️ Kim & Kankanhalli MIS Quarterly 2009

④ AI 도입 후 스트레스가 쌓였다. 타르다르 연구진은 223개 조직의 ICT 사용자를 조사했다. 새 기술이 주는 스트레스는 역할 과부하를 키우고 개인 생산성을 떨어뜨렸다. ▶️ Tarafdar 외 JMIS 2007

그러니 기존에 하던 대로 하려는 동료를 게으르다고 부르기 어렵다. 기존에 사용하던 헌 기타 줄을 바꾸게 하는 힘은 사람의 설득에서 나오지 않는다. 직원들 생각의 변화에서만 나온다. 고용의 유연성이 해외에 비해 경직된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줄 하나를 감으면 다섯 줄이 움직인다

경영진의 재촉과 직원들의 망설임 사이에서 줄을 맞추는 일은 조직이 클수록 어렵다. 줄 하나를 감으면 다른 줄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는 무턱대고 일단 해 보는 사람이었다. “Just Do It” 슬로건 처럼 용감했다기보다 기타에 줄이 몇 개 걸려 있는지 몰랐던 무식한 쪽에 가까웠다.

직원 100명 회사에서 1,000명 회사로 이직하니 문법이 달랐다. 다시 10,000명 회사로 옮기니 사정이 또 달라졌다. 하나를 움직이려면 열을 맞춰야 했다.

그런데 규모가 큰 조직에서 끝까지 일을 해내는 사람이 있다. 이 차이를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볼 때는 별거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변화를 이끌어낸 건 정말 대단한 거다. 여섯 줄을 번갈아 다독이며 곡 하나를 끝까지 연주해 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변화를 일으키고 튜닝까지 성공한 손은 어디에서 왔을까.

튜닝은 기준음을 아는 세심한 손이 해야 한다

정확한 튜닝은 조직 내부 사정을 아는 세심한 손만 가능하다. 금액적으로 외주에게 일을 맡기는 게 싸 보여도 회사가 인하우스 담당자를 뽑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인하우스 담당자가 자기 일은 안 하고 외주에게 모든 걸 맡기는 생각과 일의 외주화 같은 잘못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습도가 바뀌면 기타 줄이 늘었다 줄었다 하듯 AI 업계도 매주 날씨가 바뀐다. 바깥 날씨는 외부 전문가도 잘 읽는다. 하지만 내부 전문가는 어느 부서가 어떤 단어에 예민한지, 조직 내 협업을 할 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등을 안다.

이런 정보는 문서에 없고 복도와 회의실 공기 속에 떠 있다. 그 공기를 읽는 힘을 도메인 지식이라고 부른다. 만약 실력과 스킬이 조금 떨어져도 이런 도메인 지식이 있는 외부 전문가와 일하면 편하다.

외부 업체를 고를 때도 같다. 자기 기준점부터 내세우는 업체는 많은데 우리 사정을 먼저 들으려는 업체는 드물다.

업체는 클라이언트 찾기가 힘들다고 하고 클라이언트는 업체 찾기가 더 어렵다고 한다. 채용 시장에서도 회사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사람은 회사가 없다고 한다.

기준음이 다른 악기 두 대가 한 무대에 오른 모양새다. 둘 다 열심히 연주하는데 노래가 되지 않는다.

튜닝은 매일 한다

기타 튜닝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제 맞춘 줄도 오늘 꺼내 보면 조금씩 풀려 있다. 기타를 칠 때마다 튜너부터 켜야 하는 이유다.

회사 생활도 그렇다. 매일 사람 사이를 맞추고 부서 사이를 맞추고 나와 업무 사이를 맞춘다. AI 콘텐츠 업무효율화도 한 번 세팅하고 끝나는 시스템이 아니다. 매일 불빛을 들여다보고 줄감개를 반 바퀴씩 돌려야 제대로 된 연주가 된다.

하지만 이런 내용들은 보고서 한 장에 꾸겨 넣지 못한다. 멋있어 보이지도 않다. 외부에 자랑스럽게 말할만한 핫한 내용도 아니다. 리소스만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 좋은 노래를 들려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기타 튜너 불빛이 녹색과 빨간색 사이에서 머뭇거렸다. 이번에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노래는 오늘 맞춘 줄로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GEO 대행사가 말하지 않는 GEO 점수와 가시성의 비밀

GEO 콘텐츠는 특별하지 않다